[인터뷰] 아디다스 축구화 디자이너, 이정우
2010.01.05 15:51:03


2008/2009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축구팬인 당신은 아마 두 가지를 인상적으로 지켜봤을 것이다. 하나는 바르셀로나가, 그것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완벽한 ‘뷰티풀 게임’을 구현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170cm도 되지 않은 ‘루저’ 리오넬 메시가 ‘위너’ 리오 퍼디낸드를 허수아비로 만들며 헤딩 결승골을 작렬시키는 것.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인 스포츠 용품 업체인 아디다스의 독일 헤르초겐아우라흐 본사에서 축구화 디자이너로 활약 중인 이정우 씨(30세)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 “F50i를 신은 메시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헤딩으로 골을 넣고 신발을 벗겨졌는데도 뽀뽀를 한 적이 있어요. 그 때가 가장 감동적이었죠.” 그도 그럴 것이 F50i는 이정우 씨의 작품이다.

메시가 경외한 그의 축구화
이정우씨는 아디다스 심장부에서 일한다. 그가 몸담고 있는 곳은 ‘글로벌 디자인 스포트 퍼포먼스’팀. 한국, 독일, 영국, 벨기에 등 국적이 다양한 4명의 디자이너가 함께 일한다. 그가 여태까지 내놓은 축구화는 총 세 가지. ‘카카의 축구화’로 알려진 아디퓨어 I, II 시리즈와 메시가 입맞춤했던 F50i가 그것이다. 특히 아디퓨어의 경우에는 그가 아디다스에서 축구화 디자이너로서 막 발을 내딛기 시작했을 때 내놓은 작품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애초부터 축구화를 디자인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은 아니라는 점. “원래 영국 코벤트리에서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열 살 때 영국으로 건너가 중고등학교를 거기에서 나왔고요. 벤츠에서 인턴으로 1년 정도 일을 했는데 재미가 없었어요.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기간이 매우 길뿐더러, 전체를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예컨대 사이드 미러만 1년을 디자인하더라고요.” 그래서 2003년 그가 처음으로 선택한 직장이 이탈리아 스포츠 브랜드 업체인 휠라였고, 2년 후에는 아디다스에 포트폴리오를 제출해 당당히 합격, 축구화 디자인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가 아디다스에 입사한 이후 안 사실이지만, 축구화 디자인 팀 모두가 처음부터 축구화 또는 신발 디자인을 전공하지는 않았다. 길거리에서 그라피티를 했던 이도 있었고, 필립스에서 진공 청소기 디자인을 했던 이도 있었다. “신발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은 오히려 뽑지 않아요. 제품 디자인이나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을 선발하죠. 저희 디자이너들도 보면 신발을 전공한 사람은 아예 없어요. 이들은 포트 폴리오를 낼 때 절대로 신발과 관련된 이야기를 써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기가 여태까지 해왔던 것을 제출했죠. (이게 가능한 것이) 우리 디자이너들은 포트폴리오를 보면 입사 지원자가 신발 디자인을 안 했어도 6개월 정도 훈련시키면 따라올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거든요.”

이정우 씨는 디자이너로서 창의성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아디다스의 근무 여건에 굉장히 만족했다. 책상 앞에서 머리를 쥐어 짜내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끊임없이 영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2년 전인 2007년에는 2주 동안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다녀 왔어요. 축구화 디자이너인데도 디자인의 영감을 받으라는 이유로 아프리카에 간 거예요. 저에게는 좋은 기회였어요. 아디다스 직원들하고 이야기하는 것과 그곳의 길거리 상점 직원들과 이야기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더라고요. 사실 그런 걸 느끼고 오라고 기회를 준 아디다스에 좀 놀랐습니다.”
남다른 근무여건에 연신 싱글벙글인 그에게 조금 샘이 난 <올댓부츠>가 약간 날이 선 질문을 던졌다. 그가 만든 아디퓨어의 문제점과 축구화 경량화로 인한 부상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당황할 법도 했지만 똑 부러진 답변이 나왔다. “어느 정도 인정해요. 하지만 불편하다고 해서 발에 피가 날 정도는 아니잖아요?(웃음) 사실 저희가 축구화 디자인을 할 때 축구 선수의 피드백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아디퓨어의 경우 카카한테 그걸 받았어요. 처음에 카카도 레이싱 시스템을 왜 바꾸었냐고 물었는데 정작 신어본 후에는 좋다는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그 정도 반응이면 축구화를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했죠.”



창의성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필수
아디다스에서 근무한 지 5년째인 그는 축구화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창의성과 더불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필수라고 꼽았다. 그는 축구화를 생산하는 공정 자체가 디자인 팀뿐만 아니라 테스트 팀, 마케팅 팀과 공조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들의 의견을 수용함과 동시에 자신의 디자인 컨셉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품 디자인이 완성된다고 해도 다른 부서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과정에서 모양이 바뀌거든요. 하지만 시장에서 잘 팔리려면 디자이너가 원하는 것만을 주장할 수는 없어요. 그래도 설득할 줄은 알아야 해요. 최대한 디자인을 살리려면요.”

이정우 씨는 <올댓부츠> 독자 중에 축구화 디자이너로서의 능력과 자질을 갖췄다고 자부하는 이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해볼 것을 권유했다. 현재 아디다스 본사에는 이정우씨 말고도 한 명의 한국인 디자이너가 더 있다. 이정우 씨는 “축구화 디자인을 하려면 축구에 정말 빠져야 해요. 하지만 정말 관심 있으면 한번 지원해봐요. 제가 명함을 드릴 테니 포트폴리오를 보낼 주소를 꼭 잡지에 넣어주세요.” 디자이너 출신 <올댓부츠> 독자들은 한 번 지원해보시길! 주소는 아래와 같다. Global Design Sport Performance Adidas AG World of Sports Adi-Dassler-StraBe 1 91074 Herezogenauach Germany

인터뷰= 이민선 기자(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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