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들의 축구화를 찾아서 3
2009.08.25 16:18:19


차범근

대한민국이 낳은 불세출의 축구 스타 차범근은 대표팀 시절 여느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아디다스와 아식스 축구화를 신었는데 독일 진출 후에는 은퇴할 때까지 아디다스 축구화만 고집했다. 86년(멕시코 월드컵 때) 7년 만에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도 변함없이 아디다스 축구화를 신고 뛰었다. 12개짜리 고정식 스터드 보다 6개짜리 교환식 스터드 제품을 선호한 차범근은 축구화에 매우 민감했던 터라 아디다스사에서도 신중을 기해 제작해준 걸로 전해진다.

뤼트 훌리트

80년대 중,후반 아리고 사키 감독이 이끄는 AC밀란의 프레싱 사커가 전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킬 당시 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인물이 ‘검은 튤립‘ 뤼트 훌리트다. 그 무렵 훌리트가 보여준 폭발적이고 창조성 풍부한 공격력은 상대 팀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또한 EURO88에선 네덜란드 대표팀 주장으로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미래형 판타지스타’로도 불리운 훌리트는 당대 최고의 만능 플레이어로서 공격-미드필더-수비 등 모든 포지션에서 완벽한 플레이를 펼쳤다.

87년 유럽 연간 최우수 선수상 수상자인 훌리트는 당시 이탈리아제 로또 축구화를 신었다. 사실 80년대 중반까지 로또 축구화의 인지도는 그다지 높질 않았다. 80년대 초, 이탈리아의명골키퍼 디노 초프가 로또 축구화를 신긴 했지만 많은 선수들이 애용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후 훌리트가 착용하면서부터 로또 축구화의 인지도와 인기가 급상승했다.



드라간 스토이코비치

현역 시절 'Pixy(요정)‘로 불리운 유고의 명선수. 유럽 최고의 기술 축구를 구사하는 유고가 배출한 최고의 테크니션이 스토이코비치다. 84년 18세의 나이로 대표팀에 발탁된 스토이코비치는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월드컵 8강전에서 유고가 아르헨티나에게 승부차기 끝에 아깝게 패했는데 경기 후, 디에고 마라도나가 스토이코비치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려주면서 "이제부터 너의 시대다!"라고 말하는 등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이후 스토이코비치는 세계 톱클라스 플레이어로서 확고한 위치를 다졌다.

테크닉, 패싱력, 득점력 등을 모두 갖춘 스토이코비치는 탁월한 리더쉽도 정평이 났다. 일본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 에이트에서 7년여 간 활약했는데 당시 그의 리더쉽은 동료 선수들은 물론 타팀 선수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끼쳤다.

스토이코비치는 현역 시절 프랑스 제품인 르꼬끄 스포르티브(le coq sportif) 축구화를 애용했다. 그 무렵 스토이코비치가 신었던 모델명은 plume pixyⅡ.

필자인 김유석은 어린 시절 수없이 효창 운동장 담벼락을 넘었던 진정한 사커 키드다. 모두 대통령을 꿈꾸던 시절 홀로 차범근이 되겠다고 결심했던 이가 바로 그다. 축구를 풍성하게 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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