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의 심장, 포틀랜드를 가다
2009.05.26 21:08:24


2008년 2월 초 나이키가 글로벌 미디어를 상대로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위치한 자신들의 심장부, '나이키 캠퍼스'를 전 세계에 최초로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나이키는 '축구'에 뛰어든 이후 자신들이 일궈 온 지난 10년의 성과를 정리했다. 지금부터 <올댓부츠>가 전할 이야기는 동화같은 그들의 '신데랄라 스토리'다.<편집자 주>

2008 시즌 NBA, 서부컨퍼런스의 선두경쟁은 치열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서부지역에서 10위에 올라있는 팀의 현재 승리수가 동부지구 3위와 비슷하니 말 다했다. 원정팀 클리브랜드를 맞아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Trail Blazer, ‘개척자’라는 뜻)의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홈 경기장 ‘로즈 가든’은 무려 3만 6천명의 포틀랜드 팬들로 꽉 들어찼다. 이 날 경기를 완전히 주도한 팀은 완벽한 패싱과 팀 플레이를 선보인 포틀랜드. 그들은 5명의 선수가 마치 손발이 하나인 듯 움직였고, 4쿼터까지 포틀랜드는 경기를 완벽하게 리드했다. 반면 클리브랜드는 르브론 제임스가 펼치는 원맨쇼에 계속 의존했다. 리바운드, 패스, 슈팅 심지어는 반칙까지 모두가 르브론 제임스 한 선수의 몫이었다. 그는 현재 ‘제 2의 조던’이라 불리우고 있다.

코트 바로 옆, 관중석 맨 앞줄에서 경기장을 찾은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가 완벽에 가까운 르브론 제임스의 플레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필 나이트의 눈 앞에서 현란한 원맨쇼를 보여주는 르브론 제임스는 현재 나이키가 NBA에서 스폰하고 있는 초대형 선수 중 한 명. 경기종료 4초 전. 르브론 제임스의 원맨쇼가 끝내 승부를 뒤집는다. 포틀랜드는 83-84 단 한 점 차로 다잡았던 경기를 놓쳤다.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는 포틀랜드 출신이다. 그런데 오늘, 나이키가 키워낸 한 명의 스타선수가 나이키가 태어난 마을, 포틀랜드에게 쓰라린 패배를 선물하고 말았다. 홈팀의 허탈한 패배 앞에 3만 6천명 관중들은 그저 말 없이 경기장을 빠져나간다. 어쩌면 필 나이트만이 르브론 제임스의 원맨쇼를 ‘만끽’ 했을지도 모른다. “역시, 우리 선택이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군.” 스포츠 마케팅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이후, 나이키는 지난 10년 간 거의 완벽에 가까운 선택을 해 왔다. 오리건 주립대학 재학시절 육상선수였던 필 나이트는 ‘선수들이 원하는 신발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고, 꿈은 소박하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꿈은 눈부시게 빠른 속도로, ‘성공’이라는 바스켓에 안착했다. 축구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꿈이 탄생한 작은 시골마을, 포틀랜드
나이키가 기업 내부적으로도 잘 공개하지 않는 나이키 본사,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위치한 ‘나이키 캠퍼스’에 전세계 미디어들을 초청한 것은 지난 2월초였다. 보통 선수들과 함께 글로벌 마케팅 형식의 미디어 행사를 갖는 것이 나이키의 일반적인 연중행사지만 올해 나이키는 조금 색다른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지난 94년 미국 월드컵을 시작으로 나이키가 ‘축구사업’에 뛰어든 지 약 10년. 그들은 스스로 써 내려간 한 편의 ‘동화 같은’ 성공 스토리를 들려주기 위해 주저 없이 전 세계로부터 손님들을 초대했다.

포틀랜드는 늘 그렇듯 잿빛 하늘에 변덕스러운 날씨로 도시가 온통 촉촉하게 젖어있다. 이 곳에서는 우산을 잘 쓰지 않는다. 언제 비가 올지도 모르고, 언제 비가 그칠지도 모르기 때문. 우산을 쓰는 이들은 이방인들 뿐이다. 잉글랜드 이주자들이 세운 도시는 이름뿐만 아니라 날씨까지 그곳과 꼭 닮아있다. 항만도시이기도 한 포틀랜드는 공업이 활기를 띠던 70년대 초기에는 활성화된 상업을 바탕으로 거대 무역시장이 형성된 주요 도시 중 하나였다. 지금은 많이 활기를 잃었지만 여전히 관광과 항구는 포틀랜드에게는 중요한 수익원 중 하나. 그리고 이 도시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단어가 바로 ‘나이키’다. 그 어떤 물건에도 세금이 붙지 않아 ‘쇼핑천국’으로 불리기도 하는 포틀랜드 상업지역의 심장부에는 나이키의 모든 제품을 만나볼 수 있는 나이키 타운이 가장 큰 ‘몰(mall)’ 중 하나로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

나이키 캠퍼스 안에 세워진 ‘타이거 우즈 센터’에서 미디어들을 위해 마련된 가벼운 아침식사를 마치고, 유리창 너머로 밖을 내다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한 날씨다. 타이거 우즈의 각종 트로피와 기념품들이 전시된 이 곳은 지난 10년 간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역사’를 일궈 낸 그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짧은 시간 동안 그 누구도 넘보기 힘든 ‘그랜드 슬램’을 이뤄낸 타이거 우즈와 나이키. ‘이뤄진’ 아메리칸 드림은 어딘지 모르게 꼭 닮아있다.
캠퍼스 곳곳에서는 자유로운 복장을 한 나이키 직원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농담을 주고 받는 두세 명의 무리가 있는가 하면 업무상 주제를 가지고 편안하게 둘러 앉아 세미나를 하고 있는 직원들도 있다. 표정은 여유롭지만 대부분 눈빛은 진지하다. 나이키 본사는 거대기업의 행정화된 조직이 모여있는 곳이라기보다는 정말로 자유로운 분위기의 캠퍼스에 가깝다. 마이클 조던, 랜스 암스트롱, 미아 햄 등 유명 스포츠 스타들의 이름을 딴 5개관을 비롯 수 만평의 대지 위에 축구장, 농구장, 수영장은 물론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진 나이키 캠퍼스에는 약 2만 명의 직원들이 상주하며 일하고 있다. 그야말로 나이키의 심장부다. 실제 대학은 아니지만 늘 누군가가 무엇을 공부하고, 연구실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과학적 발견들이 계속되고, 자유로운 토론과 혁신적 아이디어가 각광받는다는 점에서 그 본질은 여느 대학과 다르지 않다.

글로벌 미디어를 만나기 위해 첫 번째 프레젠테이터로 모습을 드러낸 허버츠 호이트가 그 사실을 확인해 준다. “나이키는 모두가 오른쪽으로 가라고 할 때 ‘왜? 왼쪽으로 가면 안돼?’ 하고 되묻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일깨우는 원동력인 셈이죠.” 허버츠 호이트는 전 세계의 나이키 풋볼을 총괄하는 글로벌 매니저. 그는 지난 94년 미국 월드컵을 시작으로 ‘축구’사업에 뛰어든 나이키가 오늘날 어째서 이토록 큰 성공을 거두었는지 조목조목 설명하기 시작한다.


‘당신’이 원하는 것이 나이키의 정답
실제로 지난 10년 간 나이키 수익은 수 십배에 가까운 규모로 성장했다. 약 10년 전 4천만 달러에 불과했던 수익규모가 현재 15억 달러에 이른다. 94년 미국 월드컵 개막과 함께 본격적으로 ‘풋볼 마케팅’ 사업에 뛰어든 후 시장규모, 소비자 감성, 기술력, 광고시장, 마케팅 전략 그 어느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사실만은 그대로다. 그리고 허버츠 호이트는 바로 ‘그 사실’이 오늘날 나이키의 성공을 있게 한 비결이라고 강조한다. “물건을 원하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선수가 그럴 수 있으며, 소비자가 그럴 수 있죠.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그들입니다. 특히 나이키는 그 누구보다 선수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고자 최선을 다 합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바로 그 ‘무엇’이 그대로 제품의 ‘컨셉’이 되는 식이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07/08 시즌을 앞두고 나이키에게 ‘빨리 뛸 수 있으면서 좀 더 정확도가 높은 신발’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고, 그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기 위해 ‘머큐리얼 베이퍼 Ⅳ’가 개발됐다.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던 허버츠 호이트가 살짝 자신 있다는 미소를 짓더니 그의 등 뒤로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부가티(Bugatti)’와 달리기 시합을 준비하는 호날두의 영상을 보여준다. 새벽 6시, 맨체스터 인근. 무서운 ‘굉음’을 내뿜는 부가티와 싱글생글 귀여운 미소를 한가득 입가에 머금은 호날두. 가장 빠른 신발을 만들어 온 나이키 직원들이 가장 빠른 스포츠카와 달리기 시합을 준비하는 호날두를 마치 ‘우리가 신발을 제대로 만들었나’ 확인이라도 하듯이 진지하게 관찰한다. 가장 엉뚱한 상황에서조차 유머와 진지함을 잃지 않는 것이 그들의 강점이다. 나이키는 모두가 오른쪽으로 갈 때, 왼쪽으로 가려는 사람을 붙잡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열정을 지원하고, 그 ‘엉뚱한 발상’이 현실이 될수록 도와준다. 더 빠른 신발로 바꿔 신은 호날두는 첫 날, 프리미어리그 경기서 기다렸다는 듯이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번 시즌 그는 아스널의 아데바요르와 함께 득점왕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다. 하버츠 호이트는 “이 정도면 나이키가 호날두가 원하는 신발을 만드는데 성공한 것 아니겠는가”라는 말을 덧붙인다.

유산은 없지만, 전설은 창조된다
프레젠테이션 도중 기자단의 누군가가 날이 선 질문을 던졌다. “빠르게 성장한 만큼 나이키는 견고한 전통을 가진 유럽시장에서 역사를 기반으로 한 ‘유산’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의 나이키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선수’라는 재산뿐 아닌가. 언젠가는 그 선수들이 브랜드를 떠날 수도 있다.” 나이키가 만들어 낸 첫 번째 운동화가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본지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축구시장에서 나이키는 후발주자임이 분명했다.

하버츠 호이트는 “94년 미국 월드컵 시작과 함께 축구사업에 뛰어 든 이후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때 나이키 신발은 신고 있던 축구선수는 8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초기의 실수들’로부터 배우고자 노력했다”며 솔직한 대답을 들려준다. 그는 선수들과의 계약문제가 실제로 브랜드 마케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마케팅에 관한 한 나이키의 의지는 확고하다. 창업자 필 나이트는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나이키의 어떤 부분부터 예산을 삭감하겠냐고 물어보면, 마케팅 부서의 예산만큼은 절대로 줄이지 않겠다는 신념을 밝힌 적이 있다. 그들이 끊임없이 찾아내는 ‘스타선수’와 그 선수들이 가진 ‘스토리’ 자체가 나이키의 마케팅 전략이 되고, 브랜드 재산이 되기 때문이다.

단 8명이 신었던 나이키의 축구화는 2006년 나이키가 세계적인 선수들과 ‘조가 보니토(Joga Bonito, 포르투갈어로 ‘아름답게 플레이 하라’는 뜻)’ 캠페인을 진행할 당시 전 세계에서 60억의 방문자가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는 축구화가 되어있었다. 스타가 바뀌고, 시대가 변할 때마다 나이키는 ‘뉴 제너레이션’을 대변할 수 있는 스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를 위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축구선수들의 스토리를 하나의 상품으로 기록하고, 또 연구한다. 허버트 호이츠는 “나이키가 유소년 시스템에 주목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어린 선수들 사이에서 미래의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같은 스타를 찾아냅니다. 지금도 전세계에서 나이키의 그런 노력은 계속되고 있죠”라고 말한다.

나이키를 대표하는 스타들 중에는 펠레, 크루이프, 마라도나와 같은 ‘클래스’는 없다. 그러나 나이키는 지금 그들 스스로가 미래의 ‘클래스’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나이키가 현재 다음 세대의 선두주자로 공을 들이고 있는 선수는 AC 밀란의 파투. 하버츠 호이트의 등 뒤로 이번에는 신나는 표정을 한 파투의 인터뷰가 흐른다. “지금 밖에 비가 오나봐요?” 어딘지 모르게 들뜬 표정으로 나이키캠퍼스에 도착한 파투가 옆 사람에게 묻는다. “이곳은 늘 비가 오죠. 늘 그래요.” 부슬부슬 빗줄기를 맞으며 파투는 포틀랜드 나이키 캠퍼스에서 진지하게 머큐리얼 베이퍼를 테스트한다. 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조금 다른 곳에 있다. “제게 호나우두는 전설적인 존재에요. 그런 그와 함께 지금 한 팀에서 뛸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대단한 일이죠. 정말 기뻐요.”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이 청년은 나이키 캠퍼스의 한 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바로 자신이 지금 신고 있는 ‘머큐리얼 베이퍼’를 있게 한 장본인, 원조 호나우두의 동상이다. 호나우두에게서 파투로, 나이키는 그들 스스로 전설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창의력, 도전, 혁신’과 같은 단어들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기에는 충분한 개념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눈에 잡히지 않는 가치들을 눈에 보이는 제품으로 만들어 내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나이키의 디자인 철학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난 필 디킨슨은 ‘엉뚱함’과 ‘과학적 접근’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개의 단어를 함께 사용했다. 그는 나이키 풋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엉뚱한 상상이 새로운 제품의 개발마다 어떤 착안점이 됩니다. 우리는 좀 더 빠르고 날쌘 축구화의 뒷축을 고안하기 위해 람보르기니의 후면을 관찰해요. 비행기에 사용되는 소재로 운동화를 만들 수도 있고요. 세상의 모든 팀이 이기길 원하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팀이 이기길 원하잖아요. 그럼 무엇을 못하겠어요? 당장, 선수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야죠.”

그는 2008년 나이키에서 새롭게 출시되는 세계 각국 유니폼들의 컨셉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한국대표팀 유니폼의 디자인이 유난히 타이트하다”는 기자의 질문에 활짝 웃는다. “그렇죠. 훨씬 다이나믹하지 않나요? 나이키는 제품을 그냥 만들지 않습니다. 모든 개발 단계에서 선수들의 피드백을 받죠. 제 생각에는 이 중에서 한국대표팀의 유니폼이 가장 인상적인 것 같은데요.(웃음)”

나이키가 자신들의 제품에 자신감을 갖고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 것은 바로 그 디자인 철학이 과학적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영감’을 실제 데이터로 만들어 내는 곳이 바로 나이키 캠퍼스에서 제품개발을 위한 핵심연구가 이뤄지는 곳 ‘NSRL(Nike Sports Research Lab)’이다. 직접 연구실 소개를 맡은 NSRL의 이레즈 모렉 연구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개발을 위한 정보의 수집, 더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실제적용”이라고 강조했다. 한 예로 토탈 90을 개발할 당시 나이키 연구원들은 발등에는 70개의 서로 다른 슈팅 포인트가 있고, 공이 맞는 위치에 따라 골의 정확도에 실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냈다. 웨인 루니와 함께 수십 번의 테스트를 거친 후 좀 더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고, 이런 결과들이 그대로 디자인에도 반영됐다. 그들은 지난 6년 간 프리미어리그의 득점왕이 모두 나이키의 신발을 신고 있었다는 사실이 우연이나 기적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강조한다.

가족 같은 회사, 혁신의 원동력
나이키의 캠퍼스 투어 공개행사가 마무리 되어갈 때 즈음 기자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최고가 되기 위한 스트레스는 어디에도 없는 걸까? 2008년 새롭게 출시되는 나이키의 새로운 축구공 ‘OMNI’를 비롯 새로운 축구장비를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던 크리스 본드에게 다가갔다. 그는 나이키의 축구용품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글로벌 매니저다. “스트레스요? 글쎄요, 이 곳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더 흥분되고, 매력적이에요. 나이키 캠퍼스 자체가 하나의 ‘가족’ 같은 느낌이거든요. 이런 곳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행운이죠.”

2만 명 이상의 직원들이 나이키 캠퍼스에 상주하고 있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치열한 경쟁, 바쁜 일상,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야 하는 압박감 등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나이키 캠퍼스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여유’다. 직원들 대부분에게서도 이곳이 평화로운 하나의 ‘나이키 마을’과 같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실제로 나이키 캠퍼스 안에는 각 건물마다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최고급 카페테리아 시설부터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까지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다. 캠퍼스 한 켠에는 나이키의 일본인 투자자를 기념해 만들었다는 일본식 정원까지 있을 정도니 어느 곳으로 발길을 돌려도, 그야말로 동화 같은 풍경이 계속된다. 세계 최고의 환경이 그들의 창의력을 촉진하고 또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 내도록 돕는다.

사실 나이키가 축구시장은 물론 스포츠 마케팅 영역에서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거듭난 방식은 ‘아메리칸 드림’과 많이 닮아있다. 그것은 빠르고, 또 대중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그 자본을 바탕으로 하나의 ‘히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나이키가 만드는 옷, 신발, 가방 그 모든 것이 ‘살아있는 역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개척자들은 그렇게 역사를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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