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키의 심장, 포틀랜드를 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창의력, 도전, 혁신’과 같은 단어들은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기에는 충분한 개념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눈에 잡히지 않는 가치들을 눈에 보이는 제품으로 만들어 내는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나이키의 디자인 철학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난 필 디킨슨은 ‘엉뚱함’과 ‘과학적 접근’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개의 단어를 함께 사용했다. 그는 나이키 풋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엉뚱한 상상이 새로운 제품의 개발마다 어떤 착안점이 됩니다. 우리는 좀 더 빠르고 날쌘 축구화의 뒷축을 고안하기 위해 람보르기니의 후면을 관찰해요. 비행기에 사용되는 소재로 운동화를 만들 수도 있고요. 세상의 모든 팀이 이기길 원하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팀이 이기길 원하잖아요. 그럼 무엇을 못하겠어요? 당장, 선수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야죠.”
그는 2008년 나이키에서 새롭게 출시되는 세계 각국 유니폼들의 컨셉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한국대표팀 유니폼의 디자인이 유난히 타이트하다”는 기자의 질문에 활짝 웃는다. “그렇죠. 훨씬 다이나믹하지 않나요? 나이키는 제품을 그냥 만들지 않습니다. 모든 개발 단계에서 선수들의 피드백을 받죠. 제 생각에는 이 중에서 한국대표팀의 유니폼이 가장 인상적인 것 같은데요.(웃음)”
나이키가 자신들의 제품에 자신감을 갖고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 것은 바로 그 디자인 철학이 과학적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영감’을 실제 데이터로 만들어 내는 곳이 바로 나이키 캠퍼스에서 제품개발을 위한 핵심연구가 이뤄지는 곳 ‘NSRL(Nike Sports Research Lab)’이다. 직접 연구실 소개를 맡은 NSRL의 이레즈 모렉 연구원은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개발을 위한 정보의 수집, 더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실제적용”이라고 강조했다. 한 예로 토탈 90을 개발할 당시 나이키 연구원들은 발등에는 70개의 서로 다른 슈팅 포인트가 있고, 공이 맞는 위치에 따라 골의 정확도에 실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냈다. 웨인 루니와 함께 수십 번의 테스트를 거친 후 좀 더 정확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고, 이런 결과들이 그대로 디자인에도 반영됐다. 그들은 지난 6년 간 프리미어리그의 득점왕이 모두 나이키의 신발을 신고 있었다는 사실이 우연이나 기적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강조한다.
가족 같은 회사, 혁신의 원동력
나이키의 캠퍼스 투어 공개행사가 마무리 되어갈 때 즈음 기자는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최고가 되기 위한 스트레스는 어디에도 없는 걸까? 2008년 새롭게 출시되는 나이키의 새로운 축구공 ‘OMNI’를 비롯 새로운 축구장비를 기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던 크리스 본드에게 다가갔다. 그는 나이키의 축구용품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글로벌 매니저다. “스트레스요? 글쎄요, 이 곳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더 흥분되고, 매력적이에요. 나이키 캠퍼스 자체가 하나의 ‘가족’ 같은 느낌이거든요. 이런 곳에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행운이죠.”
2만 명 이상의 직원들이 나이키 캠퍼스에 상주하고 있지만 어디를 둘러봐도 치열한 경쟁, 바쁜 일상,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야 하는 압박감 등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나이키 캠퍼스를 상징하는 또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여유’다. 직원들 대부분에게서도 이곳이 평화로운 하나의 ‘나이키 마을’과 같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실제로 나이키 캠퍼스 안에는 각 건물마다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을 뿐만 아니라 최고급 카페테리아 시설부터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까지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다. 캠퍼스 한 켠에는 나이키의 일본인 투자자를 기념해 만들었다는 일본식 정원까지 있을 정도니 어느 곳으로 발길을 돌려도, 그야말로 동화 같은 풍경이 계속된다. 세계 최고의 환경이 그들의 창의력을 촉진하고 또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해 내도록 돕는다.
사실 나이키가 축구시장은 물론 스포츠 마케팅 영역에서 세계 최고의 브랜드로 거듭난 방식은 ‘아메리칸 드림’과 많이 닮아있다. 그것은 빠르고, 또 대중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그 자본을 바탕으로 하나의 ‘히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나이키가 만드는 옷, 신발, 가방 그 모든 것이 ‘살아있는 역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개척자들은 그렇게 역사를 만들어 간다.
05월26일
데드볼 스페셜리스트 이천수의 축구화
\"축구를 처음 시작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약 6년 동안 키카를 신었어요. 처음에는 노란 ‘뽕’이 들어간 3만 원짜리 축구화를 신었어요. 그 때는 축구화의 기능, 편리성 같은 건 모를 때였죠. 축구화와 기량을 연결시키지도 못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축구화가 달라지면 경기도 달라진다는 걸 느꼈어요. 그 때는 나이키를 신었어요. 대학 때는 제가 나이키와 처음으로 스폰서 계약을 맺으면서, 그리고 고려대가 나이키로부터 지원을 받으면서 나이키 축구화를 계속 신었어요.
저는 좀 무겁거나 투박한 느낌의 축구화는 못 신어요. 제가 스피드를 요하는 축구를 하기도 하고, 또 대표팀에서는 전문 킥커로서 프리킥을 차잖아요. 그래서 스피드를 향상 시키고 예리함을 가질 수 있는 축구화를 좋아해요. 맨발로 차는 느낌이 나는 축구화라고 해야 하나? 맨발로 공을 다루고 프리킥을 차면 잘 맞거든요. 그래서 얇고, 가벼운 느낌의 축구화, 발바닥이 밀착되는 축구화를 좋아해요. 나이키 제품으로 말하자면 베이퍼(VAPOR). 그 제품만 8년을 신었어요. 물론 다치면 크게 다칠 수 있죠.
제가 제일 아끼는 축구화는 고등학교 2~3학년 때 신었던 나이키 축구화예요. 오래 신을수록 빛나는 축구화예요. 축구화 밑창의 나이키 로고가 닳으면서 색깔이 변해요. 저희 고등학교가 고려대랑 연습 게임을 많이 했는데, 당시 그 축구화 신고 골키퍼도 막지 못하는 슈팅을 많이 때렸는데, 덕분에 제가 고려대에 진학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나이키에서 토탈90 레이저가 나오면서 많이 불편하더라고요. 밑창이 강화되면서 약간 딱딱하고 유연성이 없는 축구화가 됐어요. 계약이 돼 있어서 불편해도 신어야 하는 상황이 돼서, 이전 제품을 미국에까지 수소문해서 찾아 신었죠. 용품을 바꾸었던 이유 중 하나도 축구화가 맞지 않아서였어요.
새로 나온 푸마 제품을 신고 네덜란드 첫 선발 출장할 때 신고 나갔어요. 저는 축구화 감각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인데 새 축구화를 신자마자 나간 거예요. 프로 생활하면서 쇠창 축구화를 신고 첫 시합을 나간 건 처음이었어요. 그런데 프리킥이나 슈팅을 때려도 이상이 없더라고요. 약간 크기 조절만 된다면 괜찮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 선수 입장에서 8년 동안 신었던 축구화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은데 괜찮더라고요.
축구를 즐기는 분들은 축구화를 고를 때, 유명 선수들이 신는 축구화를 유심히 보는 것도 좋아요. 축구화에 민감한 사람들이고, 많은 고민 끝에 고르거든요.\"
이민선 기자
05월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