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있는 축구화의 원조는 '판 바스텐'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맟추어 출시된 '발목 있는' 축구화인 머큐리얼 슈퍼플라이 4를 선두로 아디다스와 푸마에서 발목있는 축구화를 이미 출시했거나 곧 출시할 예정이다. 최근 많은 선수들이 착용하고 있는 '발목 있는' 축구화의 시작이 머큐리얼 슈퍼플라이 4의 출시년도인 2014년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90년대초에 발목을 감싸는 축구화 즉, '농구화 같은 축구화'를 신은 선수가 있었다. 바로 네덜란드의 마르코 판 바스턴이다. 판 바스턴은 역대 세계 최고의 센터포워드 아니던가! 그가 어느 정도로 위대한 공격수였는지는 현역 시절 우승 및 개인상 수상 경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82,84,85년 네덜란드 리그 우승(아약스) 84-87시즌 4년 연속 득점왕(아약스) 87-88시즌 SERIE-A 우승(AC밀란) EURO88 우승(대회 MVP 및 득점왕(5골)) 88-89시즌 유럽 챔피언스컵 우승(AC밀란) 89년 도요타컵 우승(AC밀란) 89-90시즌 유럽 챔피언스컵 우승(AC밀란) 90년 도요타컵 우승(AC밀란) 91-92시즌 SERIE-A 우승(AC밀란) 92-93시즌 SERIE-A 우승(AC밀란) 93-94시즌 SERIE-A 우승(AC밀란) 89-90시즌 SERIE-A 득점왕(AC밀란) 91-92시즌 SERIE-A 득점왕(AC밀란) 88년 유럽 연간 최우수 선수상 수상(프랑스 풋볼지) 88년 세계 연간 최우수 선수상 수상(월드사커지) 89년 유럽 연간 최우수 선수상 수상(프랑스 풋볼지) 92년 유럽 연간 최우수 선수상 수상(프랑스 풋볼지) 92년 세계 연간 최우수 선수상 수상(FIFA 선정) 92년 세계 연간 최우수 선수상 수상(월드사커지) A매치 기록: 58시합/24골(네덜란드 역대 2위)       이처럼 판 바스턴의 현역 시절 경력은 화려함을 넘어 빛이 난다. 그러나 그는 현역 생활 동안 늘 부상에 시달렸다. 판 바스턴의 대표적인 부상 일지는 다음과 같다. - 아약스 시절 - 86년 오른쪽 발목 부상 후, 수술 87년 왼쪽 발목 부상(전치 2개월) - AC밀란 시절 - 87년 오른쪽 발목 부상(전치 12개월) 92년 왼쪽 발목 부상(철심을 박는 수술) 93년 5월 오른쪽 발목 부상(벨기에에서 수술) 판 바스턴의 부상 부위는 대부분 발목이었다. 축구 선수들이 발목 부상 을 많이 당하긴 하지만 판 바스턴처럼 발목 한군 데만 집중적으로 그것도 여러 차례나 다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판 바스턴이 발목을 감싸는 축구화를 신기 시작한 것은 92년 경이었다. 그 해, 왼쪽 발목에 재차 심한 부상을 당한 판 바스턴은 발목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았다. 이 부상을 계기로 당시 판 바스턴을 후원하는 이탈리아의 DIADORA사에서 그를 위해 발목을 감싸는 ‘농구화 형태의 축구화’를 특별히 제작했다.           축구화 모델 명은 Super goal. 판 바스턴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모델 명이었다. 당시 DIADORA사에서 제작한 Super goal은 캥거루 가죽을 소재로 한 검정색 축구화였는데 발목 및 복숭아뼈를 완전히 감싸는 디자인이었다. 발목과 복숭아뼈를 감싸는 부분은 가죽이 아닌 부드러우면서 탄탄하고 신축성있는 스폰지 소재였다. 그렇기 때문에 발목을 사용하는데(움직이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Super goal 축구화는 판 바스턴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모델이었던 만큼 대량 생산은 되지 않았다. 현재 Ebay에서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다.       그러나 판 바스턴은 93년 5월 프랑스 마르세유와의 유럽 챔피언스컵 결승전에서 또다시 오른쪽 발목을 크게 다쳤다. 이 부상으로 인해 판 바스턴은 벨기에까지 가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결과가 매우 좋아 94년 미국 월드컵 출전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의외로 회복 기간이 길어졌고, 결국 정상 컨디션을 되찾지 못하면서 95년 8월에 현역에서 은퇴하고 말았다. 그 때 판 바스턴의 나이 만 30세. 절정의 기량을 뽐낼 나이였다. 그의 조기 은퇴는 본인은 물론 더 나아가 세계 축구계의 비극이기도 했다 판 바스턴 외에 발목을 감싼 축구화를 신었던 또 한명의 스타 플레이어는 90년대 이탈리아 대표팀과 AC밀란 등에서 맹활약한 스트라이커 다니엘레 마사로다.         마사로는 당시 Valsport사의 축구화를 신었는데 모델 명은 MASSARO EV2500(12개짜리 고정식 스터드)과 MASSARO EVSC2500 (6개짜리 교환식 스터드)이었다. 검정색 가죽(방수 처리된 캥거루 가죽)에 주황색 라인이 그어진 축구화인 MASSARO EV2500(및 MASSARO EVSC2500)은 부드럽고 탄탄하면서 두터운 스폰지가 발목 및 아킬레스건을 완전히 감싸는 디자인이었다. 당시 마사로의 축구화는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특색이 있었다.          필자인 김유석은 어린 시절 수없이 효창 운동장 담벼락을 넘었던 진정한 사커 키드다. 모두 대통령을 꿈꾸던 시절 홀로 차범근이 되겠다고 결심했던 이가 바로 그다. 축구를 풍성하게 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축구화의 모든것 All that boots    

06월19일

고정운, 나이키와 정식 계약한 1호 모델

제가 처음 신었던 축구화는 지금은 없어진 서경 축구화였어요. 부산에서 만들어진 회사였고 정말 오래된 축구화 회사였는데 없어져서 아쉽더군요. 축구화에 대한 기억을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일단 나이키가 한국에 들어와서 처음 공식 계약을 맺은 선수가 바로 저였어요. 물론 축구화를 제공받는 선수들은 많았지만, 나이키에게서 계약금을 받고 공식적으로 스폰서 계약을 맺은 경우는 없었죠. 그 당시만 해도 나이키는 축구화에 있어서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어요. 아디다스 축구화의 경우는 독일에서 제작되어 들어온 거라 재질이 굉장히 좋았죠. 그래서 저 역시 나이키와 계약하기 전에는 아디다스를 신었습니다. 반면 나이키는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등에서 제작된 거라 품질이 썩 좋지 않았어요. 한 번 신고 버려야 하는 축구화라 나이키에서도 한 번에 20~30켤레씩 갖다주곤 했죠.(웃음) 이후에 나이키가 축구화에 있어서도 빠르게 성장해서 아디다스 못지 않은 축구화를 만들게 됐습니다. 특히 나이키나 아디다스는 최고 레벨의 선수들만 스폰서 계약을 맺기 때문에 주위 동료들이 부러워하곤 했어요. 그래서 축구화를 받으면 친한 동료들에게 축구화를 나눠주곤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축구화 스폰서를 받지 못하는 프로 선수들도 많이 있거든요. 특히 어린 선수들에게 축구화를 많이 나눠준 기억이 납니다. 현역 시절에 제가 가장 즐겨 신었던 축구화는 머큐리얼 2.0이었어요. 호나우두가 신던 모델인데 저에게 가장 잘 맞았습니다. 저는 윙어였기 때문에 가볍고 날렵한 모델을 좋아했어요. 당시 아디다스도 조금 투박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 축구화는 최근 축구화들처럼 날렵하게 나왔었죠. 그리고 한국의 잔디 토양이 딱딱하기 때문에 스터드도 플라스틱이 아니라 고무창이 달린 것을 썼어요.

06월13일

김상식, “농구화 같은 축구화는 없을까요?”

축구 선수들이 경기를 하다 보면 발이나 복숭아 뼈 부분을 다치는 경우가 많아요. 발목이 꺾여서 큰 부상을 입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낸 건데, 농구화처럼 발목을 덮는 축구화가 있다면 부상을 방지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축구화가 발목까지 올라와도 신고 경기 하는데는 문제 없을 것 같으니 충분히 가능할 것 같네요. 축구화 얘기를 하니 처음 신은 축구화가 기억나네요. 4,000원~4,500원 사이에 하던 축구화였는데 브랜드도 없는 시장표 ‘짝퉁’이었어요. 그걸 신고 초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했죠. 네? 설기현은 3,000원짜리였다고요? 나보다 더 어려웠네. (웃음)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감독님께서 키카 축구화를 사주셨어요. 그 당시 유명했던 축구화가 키카였는데 참 좋았죠. 중학교 때까지 키카를 신다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아디다스에서 제일 싼 모델을 신게 됐죠. 이후 대학에 온 뒤 선배들로부터 하나씩 축구화를 얻어가며 신었고요. 그렇게 신다 프로에 오면서 다양한 축구화를 신었고 지금은 푸마의 킹 모델을 신고 있어요. 올해부터 푸마의 스폰서를 받고 있는데 스터드가 높으니까 좋아요. 다른 건 스터드가 얕은데 이건 높거든요. 그리고 착용감도 편한데 요즘은 워낙 축구화를 다 잘 만드니까요. 사실 제가 축구화를 가리지는 않아요. 다른 선수들은 이거 신다 이상하다 싶으면 다른 걸로 바꾸고 그런데 전 적응 문제도 없이 무엇을 신든 편해요. 그래서 브랜드 같은 거 따지지 않고 발이 편하다 싶으면 신어요. 그리고 제가 축구화에 발을 맞춰버려요. 275mm를 신으면 꽉 끼고 280mm는 좀 헐거운 느낌이지만 좀 신다 보면 축구화에 발이 적응 돼버리거든요. 사람은 무엇이든 쉽게 적응되잖아요. 축구화도 마찬가지입니다.

06월11일

최고급 축구화의 제1원소, 천연 가죽

캥거루 가죽 외에 소 가죽도 많이 사용된다. 소 가죽은 ‘캥거루 가죽에 비해 탄력도 떨어지고 두껍다’는 평가를 받아왔지만, 최근에는 부쩍 좋아진 모습이다. 특히 푸마 킹XL에 쓰인 소 가죽은 웬만한 캥거루 가죽을 넘어선다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캥거루 가죽은 한 종류인 반면에 소 가죽은 3종류로 나뉜다. 소의 연령과 상태에 따라 나뉘어 쓰이고 있는 것이다. * 카프(Calf) 소 가죽 가운데 캥거루 가죽 소재에 가장 가까운 것이 \'카프\'다. 생후 6개월 이내의 아기 소로 만든 가죽인데, 표면이 매우 부드럽고 섬세하면서 탄력성이 좋은 걸로 알려져 있다. * 킵(Kip) 생후 6개월~2년 정도 된 소의 가죽이다. * 스티어(Steer) 생후 3개월~6개월 이내에 거세(去勢)된 2살 이상의 수소로 만든 가죽이다.(‘Steer’의 사전적 의미는 거세우(去勢牛)) 천연 가죽 축구화의 장점은 꼽자면 신으면 신을 수록 발에 잘 맞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기성(通氣性)이 좋고, 내구성(耐久性)도 뛰어나다. 단점으로는 변형이 빨리 되고 물에 약하다는 건데, 천연 가죽 축구화를 신고 수중전을 치렀을 경우엔 이후에 정성 어린 손질이 필요하다. 하지만 잘 만 어루만져주면 나만의 축구화가 될 가능성도 커진다고 하겠다. 최근 신 소재 축구화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축구 선수들이 천연 가죽을 선호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있다 . 필자인 김유석은 어린 시절 수없이 효창 운동장 담벼락을 넘었던 진정한 사커 키드다. 모두 대통령을 꿈꾸던 시절 홀로 차범근이 되겠다고 결심했던 이가 바로 그다. 축구를 풍성하게 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06월09일

최효진에게 축구화는 곧 아버지

‘축구화’하면 아버지 얘기를 빼놓을 수 없어요. 축구를 하는 내내 아버지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거든요. 제 위로 누님 두 분이 계시는데, 외아들이어서인지 아버지가 제게 쏟는 정성과 기대가 크셨던 것 같아요. 항상 남들보다 더 좋은 축구용품을 챙겨주셨죠.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했어요. 처음 신었던 축구화 브랜드는 ‘리복’이었고요. 대부분의 친구들이 체육사에서 ‘키카’를 사 신었던 당시로서는 굉장히 고가의 제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하지만 리복 축구화는 처음 신은 후로는 다시 안 사게 됐어요. 축구화 전문 브랜드가 아니어서 잘 맞지 않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나중에는 친구들과 똑같이 체육사에서 키카를 사 신었죠. 어렸을 때부터 축구화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새 축구화를 보면 그렇게 갖고 싶을 수가 없더라고요. 새 축구화가 나올 때마다 아버지를 조르곤 했어요. 그런데 정말 좋은 축구화는 성인용(250mm 이상)만 나오거든요. 저는 중학교 때까지 발이 작은 편이었어요. 그러니 새 축구화를 사도 실제로 신고 뛸 수는 없었던 거죠. 집에 ‘모셔놓기만’ 했던 축구화가 몇 켤레 됐어요. 그래도 아들이 새 축구화를 보면 너무 좋아하고 행복해하니까 아버지가 못이기는 척 사 주셨죠. 그때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훈련이 없는 주말마다 집(파주)에 가면 ‘전시용’ 축구화들을 신어보고 발이 얼마나 컸는지 확인했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한 번 선택한 축구화를 계속 신는 스타일이에요. 지금 신고 있는 축구화는 나이키 베이퍼예요. 신었을 때 발이 편하고 가벼운 느낌이 있는 축구화를 좋아해요. 축구화 중에서도 내 발이랑 딱 하나가 되는 느낌인 게 있거든요. 베이퍼는 가죽으로 만들어진 축구화가 아니어서(편집자 주- 나이키 스킨으로 제작) 잘 늘어나지 않아요. 축구화가 늘어나거나 발 모양에 따라 변형되면 금방 바꿔야 되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좋죠. 코팅처리가 돼 있는 것도 장점인 것 같아요. 비가 와도 축구화 속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으니 직접 신고 뛰는 입장에서 좋아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러고 보니 환경에 따라서도 축구화에 대한 기억이 달라지네요. 예전에 맨땅이나 효창운동장(인조구장)에서 뛸 때는 축구화 ‘코’가 자주 벗겨졌던 것 같은데, 요즘은 더 이상 그럴 일이 없잖아요. 그때는 슈팅을 자주 하면 축구화 앞 부분 가죽이 다 벗겨지고 구멍이 나기도 했거든요. 구두약으로 색깔을 덧칠하기도 하고 구멍 난 부분을 테이프로 붙여놓기도 했죠. 지금은 축구화들이 워낙 좋게 만들어지는데다 잔디에서 축구를 하니까 뽕이 닳지도 않고 코가 빠지는 일도 없죠. 축구화가 가벼워진 것도 좋고요. 하지만 이 이상 가벼워질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06월04일

축구화에 '미친' 매니아들, 사커즈

그들은 미쳤다. 여자도 아니고, 자동차도 아닌, 축구화와 심각한 사랑에 빠졌다. 물론 그들의 열정은 매우 순수하기 때문에 걱정할 건 없다. 가 축구화 매니아들의 소굴 \'사커즈\'를 이끌고 있는 운영자들을 만났다.-편집자주 가 축구화 사랑으로 똘똘 뭉친 다음 카페 \'사커즈(cafe.daum.net/soccerz2)의 카페지기 \'남용모[데이비드 베컴](사커즈는 실명제로 운영되는 카페다)\'씨와 또 다른 운영자 한 명을 만나기로 한 곳은 인천의 한 지하철역 앞에서였다. 한 인터넷 게임 회사에서 웹 디자이너로 재직하고 있는 남 씨는 3주 전 쯤 축구를 하다가 대퇴부에 금이 가서 휴직계를 제출한 상태라고 했다. 인천으로 향하며 \'정말 상대를 제대로 잡았다. 대퇴부는 정말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만이 다칠 수 있는 곳이야!\'라며 쾌재를 불렀다. 목발을 짚은 남씨와 바르셀로자 자켓 안에 발렌시아 크루탑을 입은 최용욱[Paul Scholes]씨는 교통 체증 때문에 허겁지겁 뛰어온 를 반갑게 맞아줬다. 남 씨가 털어 놓은 \'사커즈\'의 탄생 배경은 너무나 극적이었다. \"원래 있던 축구화 커뮤니티가 상업적으로 변모하면서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죠. 처음에는 직접 불만을 제기했는데 계속 \'강퇴\'를 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 총대를 매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게 제가 된 거죠. 2006년 12월 16일에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진성 회원\'만 1만 3,500여 명에 운영자만 해도 열 명이 넘는 국내 최대의 축구화 커뮤니티가 됐지만, 처음에는 확장이 쉽지 않았다. 전에 소속된 카페는 회원들의 이동과 수많은 정보를 옮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순수한 축구 사랑은 열성적인 회원들을 끌어들이게 됐다. 카페가 생긴 지 두달 쯤 후에 지금의 \'사커즈\'를 있게 한 결정적인 \'실명 혁명\'이 일어났다. \"사실 \'사커즈\'에 들어오는 회원들의 50% 정도는 \'매물(회원간 직거래)\'에 참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명화제는) 사기를 줄이기 위한 방법이었죠. 하지만 일방적인 시도는 아니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회원이 소수일 때는 모두가 모여 회의를 하기도 했거든요. 실명제도 회원들이 먼저 제안을 한 겁니다. 물론 사기가 근절된 것은 아니에요. 앞으로는 안전 거래 같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 씨가 설명을 덧붙인다. 익명이 일반화된 사이버 세상에서 실명으로 성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축구화의 정보를 얻는 모든 길은 \'사커즈\'로 통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됐다. 물론, 막대한 노력과 열성을 보였지만 운영자들이 얻은 것은 없다. 가끔은 억울한 비난을 받을 때도 있다. \"그래도 가끔씩 \'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카페에 정보가 정말 많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보람을 느낍니다.\" 두 사람이 웃으며 입을 모았다. 두 운영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축구화 박사를 자처하는 도 세상은 넓다는 것을 절감했다. \"스프라이트(스프린트 라이트)는 전 모델에 비해 괜찮아 졌어요. 아! 모렐웹(모렐리아 웨이브)이요? 그 모델은 이제 단종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대화에는 특정 축구화 모델을 지칭하는 축약어들이 난무했고, 축구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넘쳐났다. 반쯤 얼이 나간 상태에서 최 씨에게 결정타를 얻어 맞았다. 그는 \"피로 골절은 말이죠...\"라는 말로 시작해 축구화와 의학의 경계지점까지 정확하게 짚어내는 놀라운 내공을 발휘했다. 명예 축구화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싶을 정도였다. 계속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쏟아졌다. 이들이 묘사한 정모(정기 모임)의 풍경은 단연 압권이었다. 물론, 이들의 모임 장소는 카페 이름에 걸맞게 운동장이다. 이들은 얼마 전에도 서울의 모처에서 모여 5시간이나 축구를 하며 우의를 다졌다고 한다. \"정모를 하면 정말 재미있어요. 참가 인원이 서른 명이라면 이 사람들이 모두 축구화를 두 족 이상 씩 가져 오는 거예요.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축구화를 가져온 회원들도 많아요. 그리고 축구 실력은 제각각이지만 장비만큼은 국가대표보다 더 완벽하게 갖추고 나오는 거죠. 이야기를 듣다가 살짝 \"그럼 두 분은 축구화를 얼마나 가지고 계신나요?\"라고 묻자, \"세 족이요\", \"전 별로 없어요. 열 한 족 정도 있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최 씨가 멋쩍은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축구화를 33족 정도 보유했을 때, 불현듯 모든 \'아이들\'을 찍으려고 침대에 쫙 깔아 놓았던 적이 있어요. 근데 카메라 앵글에 전부 담기지가 않았어요. 그 때 \'아 내가 정말 미쳤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아! 근데 회원 중에는 130족을 가지고 있는 분도 있어요.\" 두 운영자는 정해 놓은 인터뷰 시간이 지나도록 \'사커즈\'에 대한 사랑과 \'축구화\'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그저 축구화가 좋아서 아무런 보수도 없이 카페 관리와 유지에 힘쓰는 이들의 노력을 보며 새삼 즐거움의 힘을 느꼈다. 그리고 기사를 정리하며 카페를 둘러보는 동안에도 이들은 계속 \'접속중\'이었다. 최씨가 대화를 신청했다. \"늦은 밤까지 고생하시네요.\" 무보수로 불철주야 노력하는 그들에게 글을 팔고 있는 는 \"아닙니다. 고생은 무슨...\"이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06월03일

2009 K-리거의 축구화, 나이키

주춤거리는 전통의 강자 아디다스와 푸마 오랫동안 축구화의 대명사였던 아디다스는 조금 주춤거리는 모습이다. 2위와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머리 속에 각인돼 있던 아디다스의 모습과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전히 프레데터 시리즈와 아디퓨어 시리즈는 선수들에게 사랑 받고 있지만 다른 제품들에 대한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다. 일례로 리오넬 메시와 에마뉘엘 아데바요르와 같은 슈퍼스타들이 애용하는 F50 시리즈는 국내 선수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3두 마차 중에 한 마리가 힘을 쓰지 못하자 아디다스의 전투력은 약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홍보, 마케팅 측면에서도 나이키에게 ‘중과부적(衆寡不敵)’인 처지라 힘에 부치는 상태다. 물론 이대로 물러설 아디다스는 아니다. 특유의 우직한 기술력에다가 참신한 발상을 탑재한 ‘F50 I’와 프레데터 시리즈의 열 번째 모델로 다시 한 번 K-리거들의 마음을 붙잡을 태세다. 한 때 축구화 시장에서 완벽하게 변방으로 밀려났던 것을 생각하면 푸마의 행보는 기대 이상이지만 인상적이지는 않다. 아디다스의 뒤를 바짝 쫓고 있지만, 새로운 모델들의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다. 프레스토, 레저버와 같은 일본제 전통적인 제품들은 꾸준히 선수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의욕적으로 내놓았던 킹과 V1.08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다행인 것은 실패를 만회하기 내놓은 V2.08이 선수들에게 반응이 좋다는 것이다. 날렵함과 특유의 발맛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단점들을 완벽하게 수정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푸마는 올 겨울에 현재의 구도를 뒤 흔들 수 있는 제품을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은 그 파급효과를 예상할 수는 없는 단계다. 어쨌든 푸마는 조금 더 분발해야 할 처지다. 한편 아식스, 엄브로, 리복, 디아도라, 로또 같은 브랜드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K-리그는 다른 리그에 비해서 축구화의 다양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 같은 브랜드들은 이러한 파도를 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들도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계속해서 주시해야 할 것이다.

06월0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