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계 최고의 유망주 스카우트 파동 요약썰.txt

[한국 축구계 최고의 유망주 스카우트 파동 요약썰.txt]   (왼쪽 차범근, 오른쪽 슈팅을 때리는 김종부)   - 김종부는 당시 차범근 후계자로 불리던 한국 축구계 최고의 유망주  - 당시 여러 팀이 고려대 재학 중이던 김종부를 노렸으나 김종부는 자신을 지도했던 이차만 감독이 있는 대우로 가고 싶었음  - 근데 고려대는 김종부를 현대로 보내고 싶어 함  - 그래서 고려대는 1986년 3월 29일, 현대에 몰래 연락을 해 김종부를 만나 계약하라고 부추김  - 이 전화를 받은 현대 관계자가 고려대로 달려왔지만 현대가 김종부 만난다는 소식을 들은 대우 역시 관계자 급파해 이 만남을 저지함    - 고대는 여기서 포기 않고 다시 한번 현대랑 김종부 만남을 주선함  - 현대와 고려대가 계획한 디데이는 1986년 3월 30일, 청주에서 현대와 대우의 개축 경기가 잡힌 날이었음  - 30일 오전 현대는 김종부 스카우트 팀을 파견해 서울 한 호텔방에 협상 테이블을 차렸고 고려대 협조로 김종부와 김종부 매형을 만남  - 현대는 온갖 혜택을 제시하며 김종부를 설득하려 했으나 김종부는 자신이 계약서에 사인하려면 먼저 이차만 감독을 만나 상황을 얘기해야 한다고 버팀  - 현대는 이차만 감독이 있는 청주로 김종부를 직접 보내면 계약이 틀어진다 생각해서 당시 스카우트 팀에 있던 김호곤 코치와 김종부 매형을 청주로 보냄 - 김호곤 코치와 김종부 매형이 같이 청주에 나타나자 이차만 감독은 시발 니들이 왜 같이 와? 눈치를 까고 둘은 “종부 현대로 갑니다” 한마디 남기고 바로 다시 서울로 ㅌㅌ  - 이 소식을 들은 대우는 비상이 걸렸고 사태 파악을 위해 특별 팀을 꾸림   - 물론 그때 서울에 있던 김종부는 계약서 사인도 안 하고 버티기 시전  - 그 와중에 입이 싼 고대 관계자는 김종부가 현대랑 만나고 있다고 신문 기자에게 입을 털었고 그 소식을 들은 현대는 기자가 호텔에 도착하기 전 다른 호텔로 이동함  - 현대는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가명으로 서울 신라호텔 방을 잡고 다시 협상 테이블을 차림  - 2차 협상에는 고대 관계자도 참석했고 오전에 시작한 협상은 밤 10시를 향해갔음  - 결국 현대는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선수 대우가 담긴 “조건부” 가계약서에 김종부의 사인을 받아냄  - 그리고 김종부는 집체 훈련(군사 정권 시절 대학생들 군사 교육)에 들어가며 외부와 연락이 끊기게 됨   - 이틀 후 현대는 영입 막타를 치기 위해 김종부 현대 입단한다는 기사를 흘림  - 기사를 본 대우 관계자들은 개빡쳤고 기자들을 동원해 김종부는 현대가 아닌 대우로 간다는 기사를 뿌림  - 이게 바로 현대그룹과 대우그룹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었음   - 여기에 대우 관계자들은 대우그룹 법무팀을 소집하고 집체 훈련을 마친 김종부도 만남 - 무슨 일이 있었나 얘기를 듣고 고민하다 현대가 기사를 뿌린게 김종부가 사인한 “조건부” 가계약서 조항 중 하나에 위반된다며 계약 무효 내용 증명을 현대에 보냄  - 여기에 현대와 계약은 고려대의 의견이며 나는 대우로 가고 싶다는 김종부 기자회견까지 가짐  - 대우에 2연타를 맞은 현대는 현대는 현대차그룹 법무팀을 데려와 “우리 계약서 있는데? 법 대 법으로 가보자”며 맞불을 놓음  - 이 두 그룹은 언론사를 동원해 언플까지 하며 여론 확보에 힘썼고 국민들은 김종부가 대우를 가야 한다, 현대로 가야 한다 싸우기 시작함    - 생각보다 일이 커지자 고려대는 당황했고 사태 수습을 위한다며 회의를 열어 김종부를 축구부에서 제명, 일반 학생으로 전환시키며 대한축구협회에도 선수 등록 취소를 요청함  - 역시나 이 사태가 부담된 대한축구협회는 고대의 김종부 제명에 따라 모든 선수 자격이 박탈되니 월드컵 대표팀에서도 제외한다고 발표함  - 이 모든 일이 계약서에 사인하고 단 25일 만에 벌어짐     - 근데 여기서 또 일이 터짐 - 김종부가 월드컵 대표팀에서 제외되니 현대냐? 대우냐?로 싸우던 국민들의 칼날이 축구협회와 고려대로 향함  - 1986 멕시코 월드컵은 대한민국이 32년 만에 나가는 대회였기 때문  - 또 김종부가 필요했던 대표팀 김정남 감독을 비롯해서 최고참급인 조광래, 허정무 등이 여론에 힘입어 김종부 구명 운동을 시작함  - 제대로 역풍을 맞은 고려대와 축구협회는 이대로 가다간 우리 ㅈ된다 느끼고 김종부 제명을 월드컵 이후에 결정하겠다며 한발 물러섬  - 김종부 제명 결정한지 1주일 만에 생긴 일들임   - 그렇게 김종부는 월드컵에 출전하여 불가리아전에서 한국 대표팀 월드컵 2호골 및 동점골을 기록하며 한국 대표팀에 월드컵 첫 승점을 선물함  - 근데 이 득점이 김종부의 목을 더욱 조이는 계기가 됨  - 세상 어떤 팀이 월드컵에서 골을 넣고 국가에 첫 승점을 선물한, 국민의 영웅이 된 유망주를 놓치고 싶겠음?     - 김종부를 놓고 싸우는 현대와 대우의 전쟁은 월드컵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불을 붙기 시작함   - 성공적인 성인 무대 데뷔를 마치고 돌아온 김종부 앞에는 더 큰 암초들만 자리 잡고 있었음  - 월드컵에서 활약한 김종부를 놓고 대우와 현대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본인들의 선수라 주장  - 고려대 축구부의 제명도 결정되며 김종부는 평범한 체교과 학생으로 시간을 보내다 87년 가을 졸업을 맞이하며 축구 없이 1년이라는 시간을 보냄    - 졸업 후 김종부는 일단 본인이 가고 싶어하던 대우로 향했으나 현대와의 문제가 남아있어 정식 선수 등록을 할 수 없었고 개인 훈련만 하며 보냄      - 이때 대우에서 먼저 수를 던짐  - 그건 바로 일본 대표팀과 친선전  - 대우는 숙적 일본을 상대로 김종부가 활약한다면 여론전에서 승기를 잡으리라 생각  - 축구협회는 이 계획을 눈치채고 친선전 승인을 내주지 않았으나 대우에서 김종부를 절대 내보내지 않겠다 사정하여 김종부 출전 금지라는 조건을 걸고 경기를 허락함     - 물론 이건 대우의 구라   - 경기 허가를 받은 대우는 지역 언론을 통해 김종부가 일본전에 출전할 거라는 얘기를 솔솔 뿌리며 경기 홍보를 함  - 이에 부산 시민은 김종부 구경 가자며 구덕을 가득 채우고 계속되는 경기에 김종부가 안 나오자 1만여 관중이 김종부 이름을 외침  - 결국 대우는 관중의 요구에 못 이기는 척, 본인들이 의도한 대로 김종부를 내보냄  - 이 소식을 들은 현대와 축구협회는 개빡쳤고 축구협회는 바로 이사회를 소집해 대우에게 벌금 천만원을 부과함  - 근데 대우는 이 벌금 끝까지 안 냄 ㅋ     -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음  - 87년 다음 해는 바로 88 서울 올림픽이 열리고 김종부는 당시 88 올림픽을 위해 특별히 육성한 청소년 대표팀의 주축 선수였음(84년 청소년 월드컵 4강 신화)  - 어떻게든 김종부를 복귀시켜야 했던 축구협회는 11월 5일 프로 선수 등록 규정을 개정하여 김종부도 등록할 수 있게 소급 적용까지 가능하다고 발표를 함  - 이 소식을 듣자마자 대우는 11월 6일 김종부와 모든 서류를 준비해 선수 등록을 해버렸고, 가계약서 1장만 들고 있던 김종부 없는 현대는 그저 손 놓고 바라봐야만 했음     - 그렇게 1년 6개월 만에 정식 선수가 된 김종부의 첫 상대는 바로... 현대였음     - 11월 6일, 김종부 선수 등록 소식을 들은 현대는 축구협회를 비판하는 성명을 냄과 동시에 대우전을 준비 중인 선수단을 철수시키고 축구협회에 대우와의 경기 불참을 통보함 - 여기에 더해 현대는 11월 6일 저녁 그룹 임원 회의를 소집, 김종부 등록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를 하게 되고  - 11월 7일 오전 현대는 팀 해체라는 초강수를 던짐  - 역시나 7일 오전, 현대의 경기 불참에 대해 논의하려던 축구협회 이사회는 현대의 해체 소식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 긴급히 현대자동차 정세영 회장(정주영 회장 친동생)을 찾아 해체 결정만은 철회해달라 요청했으나 정회장은 결정을 바꿀 생각이 없다라 직접 답을 하며 축구협회를 압박함  - 현대 해체 소식이 전해지자 축구계에서 축구협회에 모든 책임이 있다며 집행부 전원 사퇴까지 요구하기 시작했고  - 현대의 해체 선언으로 사태는 매우 심각해지며 단순히 축구의 문제가 아닌 대우와 현대 그룹 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짐     - 이처럼 김종부 사태가 축구협회 선에서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자 정부까지 나서게 됨  - 문체부 장관 주관으로 김종부 사태 해결 회의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는 청와대 교문수석과 축구협회 집행부, 개축 5구단 대표 모두 참석함  - 문체부 장관이 직접 현대에 해체를 철회해달라 요청했으나 그룹 임원 회의를 통해 검토하겠다는 형식적인 대답만 돌아왔고 정부의 중재에도 김종부 사태 해결책을 찾지 못하며 시간이 흘러감     - 결국 축구협회 집행부는 김종부 사태에 관한 책임을 지고자 회장과 이사진의 사퇴를 발표하고  - 축구계에서도 하루빨리 사태를 수습하라는 요구가 이어지자 결국 대우와 현대가 아닌 제3의 팀으로 김종부를 보내자는 의견이 나오게 됨  - 물론 대우와 현대는 이 계획에 반대했으나 2년 가까이 이어지는 소모전과 축구계 내분, 88 서울 올림픽을 위해 해피한 분위기를 연출하라는 정부의 압박 등 계속해서 고집을 부리기엔 무리가 따랐고    - 결국 김종부를 포철에 보내기로 양 팀의 합의 아닌 합의를 보며 현대 해체 철회는 50여일, 김종부 사태는 약 1년 8개월 만에 막을 내림   청춘fc에서 안정환이 말했던 “너무 잘해서 문제였지”라는 말에는 저 과정들이 함축되어있었을거라고....   출처 : 에펨코리아_킹종부  

05월08일

역발상 프리킥, 베컴 프리킥의 가장 놀라운 점

[역발상 프리킥, 베컴 프리킥의 가장 놀라운 점]   베컴 프리킥 득점을 보면 아주 놀라운 장면들이 있습니다. 바로 역발상 프리킥인데요. 보통 골키퍼들은 골대의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고 반대 공간은 수비벽에 맡기죠. 그런데 베컴은 골키퍼가 맡고 있는 골대의 좁은 공간을 노리는 역발상 프리킥을 시도하고 많은 성공을 거둡니다.   누가봐도 오른쪽 골대를 노려야 할 상황에 베컴은 좁은 공간인 왼쪽 골대에 공을 꽂아 넣습니다. 심지어 오른발로 좌측 스핀을 걸어서ㄷㄷ 이런 역발상 프리킥에 골키퍼는 역동작이 걸립니다.     이번에는 오른발로 왼쪽 골대를 향해 감아차야할 상황. 베컴은 골키퍼가 맡고 있던 좁은 공간. 오른쪽 골대를 노립니다. 역시 골키퍼는 역동작     이번에도 여지없네요. 베컴은 좁은 공간인 오른쪽 골대를 노리고 골키퍼는 역동작에 걸립니다.     놀랍게도 장거리 프리킥까지 역발상 프리킥을 날립니다. 베컴의 대담함과 자신감을 볼 수 있는 장면이죠. 오른발로 왼쪽 골대를 향해 감아차는 프리킥은 봐도봐도 충격적이네요.     이번에는 골키퍼가 오른쪽 골대를 비워뒀군요. 하지만 베컴은 골키퍼와의 정면 대결을 선택합니다.     이런 프리킥은 레알 마드리드에서도 보여줍니다. 키퍼는 여지없이 역동작에 걸리네요.   베컴의 프리킥은 볼 때마다 경이롭지만 이런 식의 좁은 공간을 노리는 프리킥이 가장 충격적인 것 같네요. 키커의 대담함과 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그걸 받쳐주는 킥 능력이 모두 더해져야 가능한 프리킥 스킬이라고 생각되네요.    

05월08일